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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의 역사

개항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중구, 인천중구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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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이야기

영종1동(永宗1洞) 영종1동
영종1동 지도

2018년1월1일 영종동에서 분동하여 영종1동으로 새롭게 개청하였다.

21c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 국가 실현을 위하여 지정된 인천경제자유구역내에
동북아 허브공항인 인천국제공항 배후에 주거·산업·업무·관광기능의 복합도시이다.

운서동(雲西洞) 운서동
운서동 지도

영종도의 주봉인 백운산을 기준으로 서쪽에 위치해 있고 백운산의 '운' 자를 따 운서동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용유동(龍遊洞) 용유동
용유동 지도

섬의 모양이 마치 용이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처럼 생겼다고 용유도라는 기가 막힌 이름을 얻게 된 섬이다.

주섬인 용유도를 중심으로 대무의도, 소무의도 등 3개의 유인도와 실미도, 팔미도 등 8개의 무인도로 되어 있다.
현재 덕교동, 을왕동, 남북동, 무의동 등 4개의 동으로 나뉜다.

영종동(永宗洞) 영종동
영종동 지도

옛날 영종도의 이름은 자연도였다.

송나라 ‘서긍’이 영종도에 들렀을 때 푸른 하늘에 제비들이 떼를 지어 나는 모습을 보고는
‘제비가 많은 섬’이라는 뜻에서 자연도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던 것을 조선조 효종4년(1654년) 남양주에 있었던 영종진을 이곳 자연도로 옮겨오면서
영종도 또는 영종면으로 통용되어왔다.
운남동, 중산동, 운서동, 운북동 등 모두 네 개의 법정동으로 되어있다.

북성동(北城洞) 북성동
북성동 지도

구한말 인천부 부내면 만석리의 일부이다.

당시 어선이 드나드는 북성포(北城浦)가 있었던 곳으로 개항 후 청국전관지계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4월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일본식으로 화방정(花房町)이라고 하였다.
광복 후 옛이름을 되찾아 북성동이 되었다.
1977년5월(시조례 제1075호)에 선린동과 합하였다.

동인천동(東仁川洞) 동인천동
동인천동 지도

구한말 인천부 부내면의 외리와 내리 선창리와 용리 일대 지역이다.

1977년5월에 개칭된 내경동과 인현동을 합쳐 1998년 10월(구조례 제438호)과소동 통폐합시 동인천동으로 개칭하였다.

율목동(栗木洞) 율목동
율목동 지도

밤나무가 많은 동네라는 뜻에서 밤나무골이라고 불려졌다.

1920년대만 해도 율목동은 내동과 함께 인천의 유지가 모여 살던 기와집 동네로 유명했다.
1900년대 초반 미곡중개업이 이곳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전국 각지의 상인들이 몰려들어 1930년대까지 크게 번창했다.

도원동(桃原洞) 도원동
도원동 지도

구한말 인천부 다소면 장천리(長川里)와 독각리(獨脚里)일부가 합쳐져 생긴 지역이었다.

1914년 일본식으로 도산정(挑山町)이라 하였는데 광복 후 우리식으로 도원동이라 개칭하였다.
황골고개말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도원동에서 숭의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름이다.

신흥동(新興洞) 신흥동
신흥동 지도

신흥동은 원래 신창동(신포동의 옛이름)과 화개동을 합한 지역이었다.

개항 초기 일제는 이 지역을 화정이라고 했었는데, 해방 뒤 새롭게 부흥한다는 뜻에서 신흥동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1910년경만 해도 지금 인천여상 남쪽 언덕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다.

연안동(沿岸洞) 연안동
연안동 지도

해안선 매립지인 항동7가 대부분과 북성동1가 일부(소월미도포함)에 해당한다.

연안동은 1985년 1월(시조례 제1895호)중앙동과의 분동(分洞)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북성동 일부는 1988년 12월(구조례 제98호)행정동간 경계 조정에 의하여 연안동으로 편입되었다.

신포동(新浦洞) 신포동
신포동 지도

답동성당 맞은 편 재래시장이 있는 신포동은 바다로 통한 내가 있다고 해서 원래 순우리말로 터진개 또는 탁포라 했다.

개항 뒤 생긴 마을인데, 터진개를 개포동으로 불러오다가
‘새롭게 번창한다’는 뜻에서 신포동이라 했다. 매립해서 생긴 땅이 많은 지역이다.

송월동(松月洞) 송월동
송월동 지도

구한말 인천부 부내면 만석리 지역이었다.

솔골, 송산(松山)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개항 당시 지금의 송월동1가 지역은 한국인 거주지이고,
2~3가 지역은 각국지계인 외국인 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일본식으로 송관정(松坂町)이라 하였고 광복 이후 동명 개청에 따라 송월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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